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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한글학자 정태진

입력 : 2014-11-12 16:04:00
수정 : 0000-00-00 00:00:00

 "말과 글은 한 민족의 피요, 생명이요, 혼이다!"
<항일운동가, 언어학자 정태진>

 

 

파주 중앙 도서관 왼편에 작은 기와집이 하나 있다. 담장이 낮아서 안을 들여다보면 사람이 살지 않음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도대체 뭐지? 정태진 생가다. 정태진은 누구야? 파주에서 오래 살았어도 정태진을 알기란 쉽지 않다.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우리나라를 집어삼킨 일본은 아시아 제패를 꿈꾸며 만주 침략(1931), 중·일 전쟁(1937), 태평양 전쟁(1941)을 차례로 일으켰다. 특히, 중·일 전쟁 이후에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완전히 말살시키고자 우리의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성과 이름도 모두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했다. 한글 신문도 모두 폐간시켰고, 민족 운동 단체도 대부분 해산시켰다.

1942년 여름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여고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면서 수다를 떨었다.

“야 이놈들아, 일본말을 사용해야지. 왜 조선말을 써?”

“조선 사람끼리 조선말을 쓰는데 뭐가 잘못 됐어요?”

친일파인 야스다(안정묵)가 조선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을 붙잡아 홍원경찰서로 끌고 가 고문하였다. 더욱이 한 여학생의 집까지 찾아가 일기장을 찾아냈다.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나는 오늘 일본말을 써서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야스다는 일본말을 썼다고 꾸짖은 선생이 누구냐며 다그쳤다.

“정~ 태~ 진 선생님…….”

학생은 여성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모멸적인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정태진 선생이라고 밝혔다. 당시 정태진은 이미 학교를 퇴직하고 함흥을 떠나 서울로 간 상태였다. 조선어학회에서 사전(조선말 큰 사전) 편찬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야스다를 비롯하여 일본 경찰은 여학생의 입에서 정태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쾌재를 불렀다. 결국 서울에 있던 정태진을 먼저 소환하고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을 줄줄이 잡아들였다.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자금을 몰래 지원하는 독립운동 단체라고 조작했고, 회원들을 모두 내란죄로 뒤집어씌웠으며, 그중 정태진을 비롯하여 12명을 기소하였다. 이로써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편찬 중이던 사전 원고는 압수되었다. 이것이 바로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사실 그랬다. 정태진은 교편을 잡은 뒤로 학생들에게 누누이 한글 사용을 강조했다.

정태진과 같은 교육자가 있었기에, 35년 동안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우리말과 우리글은 소멸하지 않았고, 우리 언어 속에 담긴 민족정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분이 바로 파주 사람이다. 정태진은 파주에서 나고 파주에 묻혔다. 그런데 파주에서 크게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황희와 율곡, 윤관만큼은 아니더라도 정태진 선생이 파주사람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중앙도서관에 방문할 일이 있거나 광탄 쪽으로 나들이 갈 일이 생긴다면 정태진 선생의 생가와 묘를 한번쯤 들러보기를...

정 헌 호 (향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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